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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시 안경, 얼마나 잘 보여야 ‘딱 좋은’ 걸까?

근시 안경을 맞출 때, “그냥 제일 잘 보이는 걸로 해주세요”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막상 진료실에서는 그렇게 단순하게 결론 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근시 안경은 단순히 ‘잘 보이는 정도’만이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고, 때로는 너무 잘 보여서 문제가 되기도 하거든요.


과교정이 만들어내는 불편한 진실

예를 들어볼까요.

30대 초반의 대학 강사 A씨는 최근 몇 개월 사이에 눈이 쉽게 피로해지고, 예전처럼 책를 오래 보기도 힘들다며 내원했습니다.

기존에 착용하던 안경은 3~4년 전 맞췄던 것.

굴절검사 결과, 무려 2디옵터 이상의 과교정이 되어 있었고, 조절근점(NPA)도 평균보다 많이 뒤로 물러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노안 초기일 수도 있겠다 싶어 돋보기 처방을 고려했지만, 정확한 도수로 새 안경을 맞춘 뒤에는 피로감이 사라졌고, 다시 예전처럼 독서를 즐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30~40대 성인에서 과교정은 생각보다 흔하며, 때로는 노안이나 정신적 피로처럼 위장되기도 합니다. 단순히 시력이 잘 나오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조절에 무리가 없는가’가 핵심입니다.


조절마비 검사로 진짜 굴절값을 확인하다

한편, 안경을 썼는데도 먼 거리가 흐릿하게 보이고 두통까지 호소하는 주부 B씨가 있었습니다.

기존 안경은 고도근시 도수였는데, 검사 결과 실제 필요한 도수보다 1~2디옵터 이상 과하게 처방되어 있었죠.

조절마비하 굴절검사(CR)를 통해 다시 측정한 도수로 안경을 맞췄더니 눈의 피로도 줄고 두통도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이런 경우, 평소에 조절력을 많이 쓰지 않는 고도근시 환자에게서 ‘잠복 조절성 원시’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는 매우 드문 경우지만, 굴절검사와 조절 기능 평가를 함께 해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근시 환자에게 과교정은 특히 조심해야

원시(우측)은 가까이가 잘 안 보여 조절에 익숙함.
근시(좌측)은 가까이가 잘 보여 조절에 익숙하지 않음

과교정된 근시 안경을 착용하면 단기적으로는 시력이 잘 나와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피로감, 조절장애, 두통, 심하면 신경계 증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근시는 원시와 달리 어릴 때부터 조절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자라기 때문에 조절 훈련이 부족합니다.

그 때문에 같은 조절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근시가 원시보다 과교정에 훨씬 취약한 셈입니다.

20대라면 -1.0D 정도의 과교정은 버틸 수 있겠지만, 30대 이후로는 그마저도 부담이 됩니다.

40대를 넘기면 작은 과교정도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줍니다.


저교정은 과연 근시 억제에 도움이 될까?

한편으로는 완전 교정이 아닌 ‘저교정’을 하면 근시의 진행을 막을 수 있다는 이론도 예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일본의 연구자들은 실제로 수천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완전 교정보다 저교정이 근시 억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 미국의 연구에선 그와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0.75D씩 덜 교정한 그룹에서 오히려 더 빠르게 근시가 진행했고, 안축장도 더 길어졌다는 것입니다.

국내외 다수의 대규모 임상연구 결과들을 종합해 보면, 저교정보다는 완전 교정이 더 안전한 선택이라는 쪽으로 흐름이 기울고 있습니다.


정밀 처방을 위한 팁 몇 가지

  1. 근시에서는 조절마비 없이 검사하더라도 과교정을 피하기 위해 MR 도수보다 0.25D 정도 낮게 처방하는 게 원칙입니다.
  2. +0.75D의 렌즈를 덧댔을 때 시력이 0.5~0.6 정도로 떨어지는지를 꼭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과교정을 피할 수 있습니다.
  3. 두 눈의 도수 밸런스를 맞추는 것도 중요합니다. 자주 쓰는 눈의 도수를 일부러 살짝 낮춰주기도 합니다.
  4. 작은 난시라도 무시하지 말고 교정하는 것이 근시의 진행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안경을 꼭 ‘잘 보이게’ 맞추는 게 정답은 아닙니다. 잘 보이지만 불편한 안경은 결국 안 쓰게 되고, 불편한 상태로 오랜 시간 버티면 오히려 시각적 스트레스만 가중됩니다.

적절한 도수란, 보이되 피로하지 않은 선.

그 절묘한 균형을 찾아주는 것이 진료실 안 의사의 역할입니다.

이어서 다음 포스팅에서는 ‘가성근시’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눈이 침침하다고 다 근시는 아니라는 이야기.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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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리즈 이어보기 << 근시란?, 근시는 안경을 언제부터 써야 할까 가성근시, 무엇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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