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진단해보는 안과질환안과밖 의학상식

주관적 시각 증상 1 – 빛과 그림자

안녕하세요 안과전문의 송한입니다.

이번 포스팅부터는 Jan Evangelista Purkinje의 저서 내용중 Contributions to the Knowledge of Vision in its Subjective Aspect을 하나씩 살펴보는 ‘각론’ 시리즈를 시작해 보려 합니다.

지난번 개론에서 “내시현상(주관적 시각 현상)”이 무엇인지, 그리고 현대 안과학이 보기에 얼마나 흥미로운 주제인지 간략히 언급했는데요.

오늘부터는 Purkinje가 직접 정리한 주관적 시각 현상 목록을 따라가며, 과거 그의 관찰과 실험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해석을 해 볼 예정입니다.


Purkinje의 ‘주관적 시각현상’

저서(원문)에는 아래와 같은 순서로 시각 현상들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1. 빛과 그림자 형태 (Light and Shade Figures)

2. 눈 압박으로 인한 빛무늬 (Pressure Figures)

3. 이전 무늬가 다른 조건에서 다시 나타나는 모습, 그리고 명료화 실험 (Appearance of the Previous Figure under other Conditions. Clarification Experiment)

4. 갈바닉 전기 자극으로 인한 빛 현상 (Galvanic Light Figures)

5. 떠다니는 흐릿한 줄무늬 (Wandering Cloudy Stripes)

6. 왼눈의 활동이 증가할 때, 오른눈의 암실 시야에 나타나는 빛 현상 (A Light Phenomenon in the Dark Field of My Right Eye During Increased Activity of the Left Eye)

7. 흰색 배경을 볼 때 반짝이는 빛점과, 시야에 떠다니는 자발적 빛무늬 (Scintillating Light Points When Viewing a White Surface. Spontaneous Spots of Light in the Visual Field)

8. 시신경이 눈에 들어오는 지점 (The Place of Entry of the Optic Nerve)

9. 시신경 유입점 주변의 물체 소실 현상 (Disappearance of Objects Outside the Entry of the Optic Nerve)

10. 빛나는 원으로 보이는 시신경 유입점 (The Entry Point of the Optic Nerve Visible as a Luminous Circle)

11. 시신경 유입점에서 빛이 나타나는 현상 (Appearance of Light at the Entry of the Optic Nerve)

12. 헤일로 현상 (Halos)

13. 눈 속 혈관 패턴 (Vascular Patterns of the Eye)

14. 잔상 (Afterimages)

15. 평행선을 볼 때 생기는 흐릿한 줄무늬 (Cloudy Streaks While Viewing Parallel Lines)

16. 평행선을 관찰한 뒤 나타나는 지그재그 반짝임 (Zigzag Scintillations Following Observation of Parallel Lines)

17. 평행 직선이 물결 모양으로 변형되는 현상 (Changes of Parallel Straight Lines into Wavy Lines)

18. 동공 자발적 움직임 (Voluntary Movement of the Pupil)

19. 가까운 곳을 집중해서 볼 때 시야 중앙에 생기는 점 (A Spot in the Middle of the Visual Field During Strenuous Near Fixation)

20. 눈 속 혈류가 보이는 현상 (Visibility of Blood Circulation in the Eye)

21. ‘날아다니는 모기’처럼 보이는 작은 점들 (Flying Gnats)

22. 곡선 형태의 별 모양 패턴 (Curvilinear Star Pattern)

23. 맥동하는 무늬 (A Pulsating Figure)

24. 빛나는 고리 (Luminous Rings)

25. 두 시야의 결합과 복시 (Unity of the Two Visual Fields. Double Vision)

26. 멀리 허공을 멍하니 볼 때 일어나는 현상 (Staring Vaguely into the Distance)

27. 눈의 움직임 (Eye Movements)

28. 잔상·상상력·시각 기억의 지속 (Persisting Images, Imagination, and Visual Memory)

이처럼 방대한 목록을 보면, 현대에 이론화된 ‘시각 생리학’의 상당 부분이 이미 이때부터 싹트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Purkinje 는 직접 ‘개인의 감각’을 관찰하고 실험을 거듭해, 왜곡된 시각 정보가 실제로는 어떻게 형성되고어떤 객관적 생리학적 기제가 작동하는지를 통찰하려 했습니다.

원문 앞부분에서 그는 “감각기관이 만들어내는 주관적 현상일 뿐, 외부에 실제 대상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각기관의 이상으로 치부해버릴 것이 아니라, 자연 과학자들이 이 ‘착각 같은 현상’을 연구함으로써 시각과 뇌(신경계)의 본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철학을 펼치게 됩니다.


1. Light and Shade Figures

Purkinje 가 처음 다룬 “빛과 그림자 형태”란?

Purkinje가 “Light and Shade Figures”라고 이름붙인 현상은, 지금으로 치면 ‘스트로보스코픽 패턴(Stroboscopic Patterns)’에 해당합니다.

간단히 말해 ‘깜빡이는 빛(flicker) 자극’이 눈에 들어왔을 때 시야 전체에 복잡하고 규칙적인 무늬(체커보드, 지그재그, 소용돌이, 광선)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스트로보스코픽 패턴

그는 밝은 하늘을 배경으로 눈앞에서 손가락을 빠르게 흔들어 줌으로써, 실제로는 아무런 구조물이 없는 곳에서 체보드(Checkerboard), 지그재그(Zigzag), 소용돌이(Spiral), 광선(Ray) 같은 패턴을 ‘시각적으로 인식’했다고 기술했습니다.

Purkinje가 직접 그린 해당 스트로보스코픽 패턴

훗날 헬름홀츠(Helmholtz)는 이 현상을 “Shadow Figures”라 불렀고, 현대에는 흔히 ‘스트로보스코픽 패턴’이라 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스트로보스코프(깜빡이는 빛으로 동영상을 만드는 장치)가 아직 발명되기 전이었는데, 퍼킨예가 이미 비슷한 원리를 시각적으로 발견했다는 거죠.

‘마법 디스크(Magic Disk)’

1833년경 ‘플라토(Plateau)’와 ‘슈탐퍼(Stampfer)’가 각각 ‘스트로보스코픽 디스크’를 발명했는데, 이는 작은 슬릿(틈)으로 된 디스크를 회전시켜, 정지된 그림들을 연속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움직임’을 착각하게 만드는 원리입니다.

• 퍼킨예 역시 1840년에 직접 이를 응용한 장치(Phorolyt)를 고안해 “매직 디스크(magic disk)”라는 상품명으로 판매했다고 해요. 그 디스크에 여러 장의 정지 그림을 꽂고 회전시키면, 심장 박동이나 도룡뇽 걸음걸이 등 “정지된 그림이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시각적 착각을 유도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실제 판매했던 제품들

즉, “깜빡임(flicker)을 통한 시각 잔상”이 연결되어 동영상처럼 보이는 원리죠.

현대의 영화·애니메이션과 기본 원리는 같습니다.


현대 안과학적 관점, 뇌의 상호작용

망막(Retina)의 특성

눈에 들어오는 빛 신호가 끊기거나(OFF) 다시 들어오거나(ON) 하는 과정을 일정한 속도로 반복할 경우, 망막의 광수용체(막대세포·원뿔세포)와 신경절세포들은 연속적인 자극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불연속적인 자극으로 인식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생성되는 “시각적 노이즈(noise)”가 패턴화되어 보일 수 있죠.

뇌(시각피질)의 처리 과정

특히 고주파수의 빛 깜빡임은 뇌가 “연속된 이미지”로 해석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뇌가 각 시점의 영상을 짧은 시간 간격으로 중첩하며 “하나의 움직이는 장면”으로 통합하는 특성 때문입니다.

환영(幻影) vs. 착각(錯覺)

당시 시대에는 이런 패턴을 “착각”이나 “그림자 형상”으로 표현했지만, 현대적 용어로는 “스트로보 효과(Strobe Effect)” 또는 “잔상 착각(Afterimage Illusion)” 등으로 설명합니다.

요컨대, ‘Light and Shade Figures’ “깜빡이는 빛”에 의해 눈과 뇌가 만들어내는 시각적 산물이며, 영화·애니메이션의 원리와 동일합니다.

퍼킨예는 이를 단순한 흥미거리로만 보지 않고, “망막·시신경이 조금만 달리 자극을 받아도 이렇게 정교한 무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주목했습니다.

이는 곧 주관적 시각 현상이 결코 희귀한 예외가 아니라, 일상적인 뇌-시각 인터페이스의 작동 방식임을 보여주는 사례죠.


다음 예고

퍼킨예는 “Light and Shade Figures”에 이어, 눈을 직접 누르거나 타격받았을 때 생기는 ‘빛무늬’(Pressure Figures)에도 주목했습니다.

압박 시에 보이는 빛(Phosphene) 현상은 무려 2,500년 전부터 언급되어 온 오래된 관찰이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다룰 예정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질문은 커뮤니티를 이용 바랍니다.

현재 시리즈 이어보기 << 내시현상 고찰의 역사 – 이상한 것들이 보인다 주관적 시각 증상 2 – 압박으로 인한 빛 무늬 (Pressure Figures) >>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